스케일업(Scale-Up) 실종, 성장엔진 꺼져가는 K-기업 성장생태계 - 기업 성장생태계 위축 징후... ①기업 규모(평균 종업원수) 축소, ②한계기업 최대, ③중간허리 기업 감소 - 이대로 방치하면 생산성 둔화 가속화, 자원배분 비효율 심화 ➜ 국가 성장엔진 약화 불가피 - 생산성, 혁신성 기준으로 기업정책 개편 시급... 규모별 규제 철폐하고 산업 생태계 동반성장 지원
우리나라 기업의 성장생태계가 갈수록 축소지향형으로 바뀌고 있어 근본적인 해법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는 ‘기업 성장생태계 진단과 과제’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의 기업 생태계가 2016년을 전후로 변곡점을 맞아 사실상 위축되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징후로 △기업 당 평균 종업원수 감소, △한계기업 비중 역대 최대, △중간허리 기업의 감소 등을 꼽았다. 축소 흐름을 뒤바꿀 근본적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기업 성장생태계 위축의 첫 번째 징후는 기업 당 평균 종업원 수의 감소이다. 기업 당 평균 종업원 수는 2016년 43명에서 2023년 40명대 수준으로 내려앉으며 영세화 흐름을 드러냈다. 공장 자동화 등 영향도 있을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중소기업의 대기업으로 성장이 활발히 이뤄지지 못한 채 소규모 기업만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결과라는 분석이다.

두 번째 징후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한계기업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3년 이상 지속되는 ‘좀비기업’의 비중은 2014년 14.4%에서 2017년 13.6%로 잠시 낮아졌다가, 다시 증가세로 전환해 2024년에는 17.1%까지 높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계기업의 노동생산성은 정상 기업의 48% 수준에 불과해 한계기업 증가는 국가 생산성 전체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세 번째 징후는 중간허리 기업의 감소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성장 사다리 단계에 있는 규모 있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종업원수 50~299인 규모의 기업은 2014년 10,060개에서 2019년 9,736개, 2023년 9,508개로 지속 감소 중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각종 지원 혜택은 사라지고 규제는 늘어남에 따라 중간허리 기업이 버티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생산성 둔화 가속화, 자원배분 비효율 심화 ➜ 국가 성장엔진 약화 불가피
상의는 기업 성장생태계가 축소지향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방치할 경우 생산성 둔화는 가속화되고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도 심화시켜 우리경제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OECD 주요국 대비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 2016년~2018년 평균 2.1%에서 2020~2022년 평균 0.9%로 1.2%p 하락했으나, OECD 24개국 평균은 같은 기간 0.5%에서 1.7%로 1.2%p 상승했다.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역시 심화되고 있다.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은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완벽하게 배분되어 있을 경우의 총요소생산성과 실제 현실의 총요소생산성 간 차이를 통해 계산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내 자원배분 비효율성은 1990년대 평균 54%에서 2000년대 평균 69.5%, 2010년대 99.4%로 상승한 데 이어, 최근(2020~2022)년에는 108%까지 치솟았다.
상의는 생산성 둔화와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생산성 높은 기업에 자원이 충분히 배분되지 못하고 낮은 기업에 자원이 몰리는 구조적 왜곡이 심화되면 결국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만큼 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생산성, 혁신성 기준으로 기업정책 개편 시급... 규모별 규제 철폐하고 산업 생태계 성장 지원 ①스타트업 자금지원 확대(벤처투자 시장 활성화 등) ②첨단산업 관련 금산분리 규제 합리화(일반지주회사의 자산운용사 소유 허용 등) ③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체계 혁신(일률적·보편적 지원 → 성장·혁신에 기반한 선별적 지원) ④개별기업 단위 지원 및 규모별 규제 → 산업 생태계 동반성장 지원

상의는 축소 지향형 경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 경제가 ‘스케일업 지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통계를 보면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성 격차가 뚜렷하다. 종업원 수 10~19인 기업의 1인당 생산액은 1.8억원에 그치지만, 300~499인 기업은 5.4억원, 500인 이상은 9.7억원으로 소규모 기업 대비 5배 이상 높다.
이는 규모 확장을 통해 ‘퀀텀 점프’ 수준의 생산성 향상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상의는 성장 사다리를 복원하고 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Size별 지원·규제’ 틀을 벗어나 생산성과 혁신의 관점에서 기업정책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혁신 역량과 생산성이 여타 기업에 비해 높은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실제로 기업은 창업초기 8년간 생산성이 높게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 잠재력이 큰 스타트업이 자본이 부족해서 생산성 향상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충분한 자금공급이 필요하다.
문제는 초기 스타트업의 주요 자금조달 방법인 벤처투자가 위축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팬데믹 시기 유동성 확대로 2021년 15.9조원까지 급증했던 벤처투자는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2022년 12.5조원, 2023년 10.9조원으로 줄었고, 2024년에도 11.9조원에 머물렀다. 초기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 시장 검증을 거쳐 스케일업을 실현할 수 있도록 벤처투자 시장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둘째, AI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민간 자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금산분리와 같은 엄격한 규제는 기본 취지는 살리되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은행·보험과 달리 시스템 리스크가 적은 자산운용사를 일반지주회사가 설립·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고,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도 보다 활성화될 수 있도록 외부자금 출자한도·해외투자 한도 등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셋째,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체계 역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중소기업 지원사업 수와 예산 규모는 2018년~2023년 사이 각각 15.7%, 60.2% 확대되었으나,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가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중소기업 경쟁력 순위는 2005년 41위에서 2025년 61위로 떨어져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투입은 늘었는데 경쟁력은 후퇴한 만큼 일률적·보편적 지원이 아니라 성장성과 혁신성에 기반한 선별적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넷째, 기업 규모별 지원이 아닌 산업 생태계별 지원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크기에 따라 지원과 규제가 나뉘어 있었지만, 실제 성장은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연결된 생태계 전체의 역량에서 나온다. 기업 TSMC의 도약이 대만의 반도체·AI 생태계와 밸류체인 전반에 파급효과를 일으킨 것처럼 한국도 개별기업 단위 지원에서 벗어나 산업 생태계 전반의 동반성장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대한상의 강석구 조사본부장은 “지금과 같은 ‘축소’지향형 기업 생태계에서는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성장 역량이 큰 기업이 제때 도약할 수 없다”면서 “보호 위주의 중소기업 정책을 일정부분 성장에 포커싱하고, 민간 자본시장 활성화로 기업의 스케일업을 촉진해 국가 생산성 정체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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